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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동안 신용보증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채권관리였습니다. 사업자가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하면 재단이 대신 갚아 줍니다. 이것을 대위변제라고 합니다. 재단이 대신 갚은 돈은 다시 사업자가 재단에 갚아야 합니다. 이것을 구상채권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구상채권을 회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채권회수 업무를 하면서 많은 사업자를 만났습니다. 채권관리부를 장사가 잘되어 기쁜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사업이 어려워지고, 대출을 갚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 한 음식점 사장님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빚보다 무서운 것은 독촉전화였습니다
그 사장님은 제가 보증부장을 할 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3천만 원에 해당하는 보증지원을 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음식점이 제법 잘되었습니다. 가끔 지나가다가 들려 커피 한잔을 하면서 사업이 잘 되는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매출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습니다. 직원 월급을 줘야 했고, 가게 임대료도 내야 했습니다. 거래처 대금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운영자금이 부족해질 때마다 조금씩 돈을 빌렸습니다. 신용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에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금방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사가 다시 살아나면 모두 정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은행 대출도 연체되었습니다. 재단이 약 3천만 원을 대신 갚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재단에도 갚아야 할 돈이 생겼습니다.
채권을 확인해 보니 채권자가 한 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금융회사에서 조금씩 빌린 돈이 모두 연체된 상태였습니다.
채무 상환 상담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잠시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도 힘든데 전화가 더 힘듭니다." 아침에도 전화가 옵니다. 점심에도 옵니다. 저녁에도 옵니다.
하루에도 서너 군데에서 빚을 갚으라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습니다.
집에 있어도 불안하고, 가게에 있어도 불안했습니다.
손님 앞에서도 전화가 울렸습니다.
장사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채권회수 담당자인 저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채무도 혼자 갚으려고 하면 더 힘들어집니다
채무 현황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여러 금융회사에서 각각 독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혼자 해결하려고 버티는 것보다 먼저 상담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 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채무를 조정해 주는 기관입니다.
상담을 통해 현재의 소득과 채무 규모, 연체기간 등을 확인한 뒤 본인에게 맞는 채무조정 제도를 안내합니다.
연체 초기에는 신속채무조정이나 사전채무조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연체가 오래된 경우에는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상환기간을 늘리고 연체이자를 감면받을 수도 있습니다.
상환능력에 따라 원금 일부를 감면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러 금융회사에서 각각 독촉을 받던 상황을 하나의 채무조정 절차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됩니다.
매달 갚아야 하는 금액도 현재 소득에 맞게 조정됩니다.
빚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갚을 수 있는 방법을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던 채무를 현실적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독촉전화가 멈추자 다시 장사를 생각했습니다
채무조정을 신청하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채권추심이 중단됩니다. 그 사장님의 일상에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이 독촉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던 전화가 멈췄습니다.
상담을 다시 하면서 표정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돈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닙니다. 빚이 모두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장사에 집중해서 다시 갚아보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채권관리 업무는 돈을 회수하는 일입니다.
오랫동안 그 일을 하다 보니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업자들은 빚 때문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반복되는 독촉과 압박 속에서 먼저 지쳐 버립니다.
혼자 해결하려고 버티다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채무를 해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돈보다 정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제도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빚이 생겼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이 어려워졌다면 가능한 한 빨리 상담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채무조정은 빚을 없애 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제도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음식점 사장님도 독촉전화가 멈춘 뒤 비로소 장사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